조은후 zo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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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운 / 이야기하며 산다는 것
인간은 무엇의 발명인가? 폴 비릴리오의 시각처럼 비행기가 추락의 발명이고 선박이 난파의 발명이라면, 우리도 결국 떨어지고, 넘어지고, 깨어지기 위해 태어난 걸까? 우리는 왜 고달프도록 살아야 하는가. 정말로 삶이 난제로 가득한 여정이라면,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어떤 것들을 품에 안을 수 있을까? 생사는 덩어리다. 생을 되새김질하면 찌꺼기처럼 사가 붙어 나온다. 씹다가 언제 걸려 나올지 모르는 불순물처럼 죽음은 늘 그렇게 무작위로 있다. 한편, 죽음을 직면할 때 비로소 삶의 존재가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본인의 죽음은 사후적으로 인식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다른 존재의 죽음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다시 보게 된다. 특히 가까운 이의 죽음은 살아 있는 이의 시각을 충격적으로 교정1시켜주기도 한다. 새로운 눈은 과거와 미래 없이 한순간으로, 자신의 인생을 조망하게 한다. 이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싶다.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에 거역할 수 있다. 이야기는 순리에서 벗어난다. 시간적 유한성을 거부하고 한없이 영원하게 뻗어나간다. 이야기마다 시간은 다른 방향과 밀도, 깊이를 가진다. 이야기는 시간을 애도하는 방식이다. 세상이 곤경으로 움직인다면 우리는 어려움을 이야기해야 한다. 서사로 인생의 몸집을 불리다 보면 어느새 다른 이의 인생과 포개지는 순간이 온다. 결국 우리는 이야기로 서로를 안으며 살아간다.
1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난다, 2021), p.51
지하운(기획자, 《어쩔 수 없음들과의 여정》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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